3월 17일 기준, 핀란드의 확진자는 322명 정도이다.
다른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 (확진자 1422명) , 스웨덴 (1175명) , 덴마크 (960명)를 고려하면 선방한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정부는 3월 16일 부터 모든 초중고 및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핀란드의 공신력 있는 방송국인 yle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4월 13일까지 휴교령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상은 간략한 수치로 전해지는 핀란드의 상황이고, 이제부터 필자가 실제 체감하는 핀란드의 상황에 대해 서술하겠다.
I. 핀란드인들의 대처
1. 마스크
끼지 않는다.
내가 마스크를 낀 사람을 본 건 아시아 마켓의 아시안들뿐이었다.
2. 청결
애매하다. 내가 핀란드에 존재하는 모든 핀란드인들을 만나 본 건 아니라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핀란드인들은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미국놈들이나 다른 유럽놈들에 비해서는 선방했다고 본다.
3. 사회적 거리두기 ( 및 자가 격리)

핀라드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퍼스날 스페이스를 칼 같이 지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남부 유럽과 달리 핀란드는 아직도 날이 풀리지 않았다. 하늘이 맑은 날도 별로 없거니와 구름이 끼지 않더라도 추운 건 그대로이다. 다른 유럽놈들과 달리 밖으로 나와 피크닉이나 축제 따위를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아직까지 정말...춥다...
월요일, 그때까지는 아직 수업이 있어 학교를 갔다오는 길이었다. 중앙 기차역을 지나가는데 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정말 없는 것이었다. 핀란드에 사람이 없더라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가장 붐비는 헬싱키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듬성듬성하게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수업이 끝나고 퇴근 시간쯤이면 아무리 핀란드라도 트램과 트램 정류장에는 사람이 꽉 차기 마련이다. 그런데 핀란드인들은 재택근무와 휴교령을 정말 칼 같이 지키고 있는 것 같다. 트램 정류장과 트램에는 사람이 텅텅 비어있었다. 긴 겨울에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에 능숙해져있었기 때문일까. 아직까지는 자가격리 및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잘 지켜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집순이/집돌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같다. 교환을 가기 전, 서양 문화권에서는 주말에 활동적으로 나가 놀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그 누구도 집 밖으로 안 나가는 사람에 대해 뭐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말에 뭐 하냐고 물어보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핀인들도 많았다. (사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핀인들이 그렇게 대답했다.) 이런 분위기라서 그런지 자가 격리나 거리 두기가 큰 저항없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더불어 핀란드는 재미가 없다. 바로 이 점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끊게 만들어 다른 북유럽 국가와 달리 핀란드가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난 2,3월의 핀란드. 재미없다! 나는 정말 핀란드를 좋아하고, (아니 사랑하고!) 이곳에서 지내는 게 너무나도 즐겁지만 그거와 별개로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다. 내 주변 비공식 핀사외모 (핀란드를 사랑하는 외국인 모임) 회원들도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I love Finland, but..." 세계의 관광객들이 굳이 찾지 않는 3월의 핀란드. 7일 중 6.5일을 차지하는 구린 날씨, 나약한 우산은 그 형태를 찾기 어렵게 만드는 헬싱키의 미친 바닷 바람, 눈과 비가 질척하게 섞여 만들어진 진흙탕. 놀 줄 아는 관광객은 핀란드를 찾지 않았고, 그덕에 아직은 존버 중이라는 게 내 개인적 추측이다.

II. 사재기
1. 대형 마트
서양 문화권은 도대체 왜 휴지를 사재끼는 것일까?
저번 주 금요일 (3월 13일), 알고 지내는 핀란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핀란드인들이 Panic shopping 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어봤냐는 것이다. 핀란드인들과 사재기. 사실 썩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이다. 또한 비상 상황에서는 으레 상황이 과장되어 전해지기 마련이라서, 몰랐다고 대답은 했지만 내심 실제로 사재기가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녁거리를 사러 대형 쇼핑몰의 대형 마트에 갔는데 미친 전쟁 난 것처럼 청과물 일부(바나나 등), 식빵, 휴지, 손세정제, 파스타면, 통조림 등이 싹 빠져있는 것이다. 아포칼립스 영화 도입부와 같은 상황에 말을 잃었다. 나처럼 퇴근 시간이 지나 설렁설렁 장을 보러온 핀란드인들 모두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읽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당혹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다만 그 외의 것들은 다행히 재고가 꽤 있었다.
소형 마트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식료품의 경우, 품절된 물품이 마트마다 각각 다르긴 했지만 파스타면과 식빵은 모두 없거나, 몇 개 안남은 상태였다. 또한 공통적으로 휴지와 손세정제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이 휴지 사재기로 난리가 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핀란드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 아니, 도대체 어째서인가? 도대체 왜 서양인들은 비상상황에 휴지를 사는 것인가? 누군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댓글로 제발 알려주시길 바란다. 이제 나는 검정고무신 마냥 휴지 대신 신문지를 쓰게 생겼다... 그 후 주말 내내 대형 마트를 기웃거렸으나 휴지와 손세정제 사기는 번번이 실패했다.
충격을 뒤로 한 채 주말이 월요일 (3월 16일), 센터에 있는 대형 마트 중 하나를 찾았다. 다행히 거기에는 손 세정제와 휴지가 남아있었다. 주말이 지나자 사정이 좀 나아졌는지 파스타면과 다른 식료품들도 재고가 많이 남아있었다. 다만 핀란드의 마트마다 있는 샐러드바는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이건 이 마트만 그런건지 아니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발함에 따라 모든 마트가 일시적으로 운영을 정지한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중지한 게 맞는 것 같다.)
2. 아시안 마켓
사재기 상황에서도 외면받는 핵불닭볶음면
(1) 라면
I-1 의 상황을 경험하고 와 이러다 진짜 좆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그 다음날인 토요일 (3월 14일) 오후 4시쯤 아시안 마켓을 찾았다. Hakaniemi (하가니에미) 지역에 있는 두 아시안 마켓을 찾았다. (참고; https://vitrioll.tistory.com/42?category=851116) 마스크를 쓴 아시안들이 북적북적 모여있었다.
우선 라면부터 쟁이자 해서 갔는데, 메이저 봉지 라면은 싹 빠져있었다. (컵라면은 그나마 좀 남아있었다.) 이름을 알만한 라면은 너구리, 비빔면, 핵불닭볶음면, 까르보 불닭 정도였다. 그 외에는 마이너 회사의 마이너 라면들 뿐이었다. 무슨 순라면? 하나도 매워보이지 않는 라면과 낚지볶음면인가 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라면이었다. 사실 불닭볶음면을 꼭 사고 싶어서 갔는데 핵불닭볶음면만이 남아있다니...아무리 급해도 저건 사고싶지는 않았다. 앞서 사재기를 한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나보다.
(2) 쌀
쌀은 많다.
나는 핀란드에서 쌀요리는 해먹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않았으나, 구할 수는 있다. 맛있는 쌀일지는 미지수지만.
(3) 기타 (김치, 고추장, 된장, 간장 등)
토요일 (3월 14일 기준), 김치, 고추가루,고추장,된장,부침가루,빵가루,카레 가루 등등은 의외로 구매하기 쉬웠다. 대체로 대용량을 구비해 놓고 먹는 재료들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다만 의외로 간장은 찾기 어려웠다. 진간장을 구매하러 갔는데 국간장만 한바지로 남아있었다...
냉동식품의 경우, 만두는 바닥을 보이긴 했지만 꽤 남아있었다. 그러나 훗날 핀란드에 교환/유학을 가는 학생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핀란드 아시안 마켓에서 파는 냉동 만두는 비비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쓰레기다...(참고; ) 나는 만두도 이렇게 맛없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III. 인종차별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아직 내가 직접적으로 당한 경우는 아직 없지만, 내가 당하지 않았다고해서 인종차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 지인 중 한 명인 아시아계 핀란드인은 요즘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핀란드인들의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핀란드어를 쓰는 모습을 보아도 냉담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엔 사람들의 시선에 지쳐 외출할 때 선그라스를 쓰고 스카프를 맨다고 했다. 그러나 현지 핀란드인과 달리 외국인인 나는 핀란드인들의 표정을 읽기가 좀 어렵다. 핀란드인들은 평소에도 표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유 없음) 이게 평소 표정인지, 아니면 적대적인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아직은 동양인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으악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지랄하는 핀란드인들은 보지 못했다.

IV. 헬싱키 대학교 (교환)학생들의 상황

1. 헬싱키 대학교 학생들
원래는 50명 이상의 수업만 취소가 된다고 했지만, 그 후에 다시 모든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덕에 내 친구 중 한명은 모든 수업을 종강까지 셀프 스터디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아시아권으로 교환학생을 오겠다는 학생들의 경우, 중국행 교환은 모두 취소 되었다고 들었다. 다마 한국/ 일본으로 교환을 가는 학생들은 아직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무사히 교환학생을 갈 수 있도록, 한국 상황이 빠르게 진정되기를 바란다.
2. 헬싱키 대학교 교환 학생들
수업은 모두 온라인 모듈로 변경되거나 셀프 스터디 형식으로 바뀌었다. 헬싱키 대학교는 교환학생들에게 처분을 어떻게 할거라는 공지를 보내주지 않았다. 수요일 (3월 17일)이나 되어서야 교환학생의 처분에 대해서 결정이 난다고 들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번 학기에는 한국 사람을 사귀지 않아서 그런가, 한국인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유럽국가에 있는 한국 친구들 중에서는 귀국한 사람이 꽤 된다. 오늘 헬싱키 대학교로 교환 온 일본 학생들 중 대다수가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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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밀프렙에 꽂혔다. 저번주는 닭 볶음탕 이번주는 샐러드다. 한 번 만들어서 쟁여놓고 여러번 꺼내먹는 걸 거창하게 표현하기. 이렇게 소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를 쥐여짜내야만 삶의 활력이 돈다. 마트에서 다른 것보다 조금 비싼 사과를 샀는데 넘 달고 맛있어서 감탄 했다. 덧붙여 요즘 재밌게 보는 미드가 있다. 상담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미드인데, 매 화가 흥미진진하다. 어제는 처음 가보는 길로 맥도날드에 갔다. 오랜만에 먹은 맥너겟에 스윗앤사워 소스가 맛있었다. 또 저녁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으려고 시도했다. 갑자기 어렸을 때 주말마다 아빠랑 만들어 먹었던 게 기억 났기 때문이다. (달고나 커피의 유행도 약간은 영향을 주었다.) 아근데 젠장 너무 오랜만에 만들어서 그런가 태워먹었다. 다음엔 이번의 실패를 참고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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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한국에서 안부 연락이 많이 오고있다. 분명 한 달 전만해도 내가 난리치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때렸던 것 같은데, 참 인생 알 수 없다. 한참 좆되고 있는 유럽에 (아직까지)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 하기는 민망하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다. 공부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면서 지낸다. 각자의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가거나/ 아직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선택이나 상황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Moi moi!
-참고한 사이트들
1. 핀란드 및 북유럽 코로나 현황 (3월 17일 기준) ; coronaboard. kr
2. 핀란드 휴교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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