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7박 8일의 여행 동안 좆같은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던 여행이었다. 

현지인 친구 (및 지인) , 0에 가까운 기대감,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 저렴한 물가, 도저히 망하기 힘든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쾌감과 묘한 찜찜함만이 남은 여행이었다.  

3월의 스페인 여행, 이 첫글에서는 내가 스페인에서 당했던 인종차별에 대해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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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아프리카 모로코가 보이느 타리파의 바다

 

 

여행의 시작은 단순했다. 현지인 친구가 초대를 했고, 마침 방학이기도 해서 별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 행선지는 스페인 최남단의 항구도시 타리파 Tarifa, 그리고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Granada 였다. 공항은 말라가 Malaga에 있었으나 말라가에 있던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먼저 말라가 공항에서 해변에서 아프리카 모로코를 볼 수 있는 타리파 Tarifa 로 떠났다. 과연 절경이었다. 호텔도 전망이 좋은 곳이어서 창문을 열면 파란 해변과, 바다 건너 모로코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스페니쉬 한 무리 사이에 동양인 하나, 이 이상한 조합때문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타리파 도시 전체에서 내가 동양인을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그마저도 가게의 점원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한 바가지의 백인들 가운데 혼자 동양인이었던 경험이 많아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와 호기심에서 비롯된) 촌스러움에 관대히 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시선에 짜증이 날 무렵 내 뇌리에 남은 첫 번째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유형 1. 면전에 대놓고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외치는 스페인인들.

; 나도 몰랐던 나의 정체성을 친히 알려주고자 하는 친절한 스페니쉬들. 

좆같은 시골 촌구석에 짱박혀 있는 스페인 (혹은 유럽의) 사람들에게 동양인은 그저 걸어 다니는 코로나다. 

 

친구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동행을 요구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너무... 더러웠다...

인종차별 문제와 별개로 스페인의 화장실은 너무 더럽다. 물을 잘 내리지 않는 것 같다. 화장실에 6칸이 있으면 그중 2개는 휴지 뭉텅이가 내려가지 않은 채 있고,  2개는 분비물이... 묻어있으며 나머지 2개는 저 난리가 동시에 일어나 있다. 결벽증이 있는 사람들이 살 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혹은 세비야에 가보지는 않아 다른 곳들은 어떤지는 모른다. 부디 이 문제가 타리파와 그라나다만의 문제이기를 바란다.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도저히 볼 일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나왔고, 내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화장실이 고장이 났다, 고 말했다.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스페니쉬가 깔깔 웃으며 뭐라 뭐라 스페인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가 뭐라고 스페인어로 대꾸하고, 그 사람들은 다시 웃으며 내 친구에게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단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친구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나를 가리켜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당황해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건 무례하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웃으며 그저 농담인데 왜 그래? 이 지랄을 떨었다는 것이다. 좆같았다. 어쩐지 그들 뒤에 서 있었던 다른 사람이 난처한 얼굴로 No worries라고 말해서 화장실이 고장 난 것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려 깊은 사람이구나 했더니, 그 미친 스페니쉬의 말에 나를 위로한 것이었다. 개 같은...

 

 

(여담이지만 이후로도 동양인을 향해 코로나 바이러스 외치는 사람들을 몇 번 봤음에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는데, 나중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꼬로나 비루스,라고 외쳤기 때문이었다. 앞부분을 놓치면 그게 바이러스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하기 힘들어서 바로바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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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람브라 궁전에 같을 때, 한 무더기의 중국계 단체 관광객들이 (아마 홍콩? 이쪽인 것 같다.) 나와 내 친구 옆을 지나갔다. 어떤 남자가 그를 앞서있는 동양인 관광객들을 향해 뭐라 스페인어로 소리쳤고, 그 말에 친구가 콧방귀를 뀌었다. 대충 뭐라했는지 감은 잡혔지만, 친구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코로나바이러스들이 코로나를 옮기며 다닌다, 뭐 이런 류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때 알함브라 궁전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고, 단체 관광객들도 많았다. 간발의 차이로 그때의 한국 관광객들은 그 개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미친 스페니쉬놈이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형 2.  몸으로 말한다. 

;꽤나 클래식한 반응들- 목티 끌어올리기, 몸에 닿는 것도 거부하기. 

정도 없는 무식함에  감탄을 하게 만드는 빡대가리 스페니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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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관광을 끝내고 친구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서 한 사람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목티를 쓱 올리는 것이 아닌가. 날도 더운데 돌아벌인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는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계속 목티를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 전부터 동양인을 보면 목티 올리며 지랄하는 사람들이 있었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었다. 그래서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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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스페인은 신체접촉이 잦은, 굉장히 intimate 한 문화를 가졌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새로운 스페인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모두 나에게 빠짐없이 뺨을 맞대고 비쥬를 해주었다. 단 한 명만 빼고...

길거리에서 친구의 이웃을 만났던 적이 있다. 둘이 찐하게 비쥬를 하고 근황을 나누고, 나는 멀뚱히 서서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가 나에 대해 소개를 하자, 쪽쪽거리며 비쥬를 나누던 이웃이 스치듯 악수하고 재빨리 내 손을 뿌리쳐버리는 것이었다. 그건 악수라기 보단 쌀보리 게임에 가까웠다.

사실 그때 스페인에서는 교육 정책과 관련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친구의 부탁으로 시위에 머릿수나 채워주려고 갔던 것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스패니쉬 한바가지인 무리에 동양인인 내가 참여한다? 안 봐도 뻔한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더불어 점점 유럽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대규모 집회를 열다니... 정말 이 새끼들 돌아버린 게 분명하군이란 생각을 했다. 친구에게는 내가 동양인이라 다른 사람들이 패닉에 빠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미안해하고, 속상해했으나 글쎄, 사실 나는 괜히 거기 있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슈퍼 전파자 오명을 뒤집어 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열에서 빠져나와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많은 사람이 모여 행진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그렇게 걱정되면 대규모 집회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내 모습 (출처; 트위터 직장인 짤봇) 

 

 

인종차별에 쓰는 에너지의 반만이라도 공중 위생을 지키고 코로나 예방 수칙을 공부하는데 썼더라면 확진자가 600명 (3월 9일 기준)에 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은 슈퍼 울트라 민족이라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 믿는 자신감과 미친 상황에서도 그저 꽃밭인 대가리, 평생 우울증과는 먼 생활을 영위할 것만 같다. 정말 그 태도 배워야 한다. 

 

 

유형 3. 인종차별 심화 유형- 논점 흐리기. 

그들이 내게 친절했던 건 내가 그들(친구)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사실 이건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건 내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영어가 가능한 현지 스페니쉬와 오래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 인종차별이라, 사실 적어봤자 나만 기분 나쁜 기억을 복귀하고 끝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력히 적어보자면, 그들은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유형의 인종차별을 인종차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 일로 기분이 나쁜 건, 스페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말하자면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히 적자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안 할 수 없어 핵심을 짚자면 그렇다.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스페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농담으로 눙치는 문화가 있고, 이건 코로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더불어 (자기 생각에)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이것에 대해 세계인에 대한 일체감? 통일감을 느낀다고 한다. 

무식한 놈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라는 말이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첫 번째 의견의 경우, 농담이라는 것은 당사자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에 대해 자신들(유럽 사회 혹은 스페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이를 농담거리로 삼는 것은 조롱이지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코로나 발발 이후, 코로나를 핑계로 동양인애게 린치를 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스페인 사람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농담을 해~이건 문화적인 거야~라는 식의 코멘트야 말로 우스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문화적인 거라면 문화적인 거일 지도 모르겠다. 몇 백 년을 식민 지배를 통해 부를 축적해온 사람들의 문화적 천박함이 21세기에 들어서는 인종차별의 양상으로 나타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일정 부분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후자의 의견에 대해서는, 솔직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종에 대한 무지, 거부, 그리고 멸시가 만연한 세계에서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인종차별적인 사고/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건 인종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위치한 백인 남성이 감히 입에 올릴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백인으로 태어나 단 한순간도 인종 차별에 대해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을 사람이, 인종 차별 문제에 있어 모두가 공평하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건 인심 좋은 아시안이나 흑인, 히스패닉, 혹은 아랍인이 우스갯소리로 던져야 하는 말이지, 내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종차별에 시달린 사람을 앞에 둔 백인이 할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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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내 친구만 해도 다른 스페인놈들이 나에게 치나 (차이나), 혹인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부를 때마다 나를 대신해 화를 내주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일상의 상황에서 통역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저 미친 스페인 대머리 새끼가 뭐라고 했는지 얘기해줄 사람이 있었고, 또 거기에 싸워줄 사람이 있었기에 사소한 다툼이나 불편함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현지인들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면, 분명히 더 많은 인종차별과 불친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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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이탈리아를 기점으로 유럽에도 점점 코로나가 퍼지고 있다. 더불어 많은 유럽 국가들이 충분한 의료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뭐... 코로나에 지지 않는 우월한 인종을 가진 백인들은 알아서 잘 헤쳐나가겠지. 나는 그저 미천한 아시안인 답게 비말 감염에 신경 쓰며, 사람이 많이 모인 집회에 가지 않고, 손을 깨끗이 씻고 얼굴을 만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노력해야 할 뿐이다. 

 

 

그렇게 유난을 떨더니 니네도 결국 (이승과) 헤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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